티스토리 뷰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HI_BUSAN_KI 2019. 12. 27. 14:57
728x90

 

 

세 번째 읽은 그의 저서,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알쓸신잡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던 건축가 유현준의 신작 에세이다. 

방송에 나오는 패널 중 유난히 유현준에게 관심이 갔던 이유가,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건축물에 인문학, 지리학 등 여러 학문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건축물에 엮여있는 여러 요소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모습에 건축가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다방면에서 잘 알까? 하며 신기해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 그의 저서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에 이어

세 번째,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이전의 두 책과는 다르게 수필, 에세이처럼 본인이 지금껏 살아오며 경험을 했던 곳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한 책이다. 

빈 공터, 골목길, MIT 스튜디오, 건축물 등 수많은 곳들에 대해 담담히 서술하며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린 시절, 본인만의 공간에 대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1994년 스물다섯 살 때 내 별명은 '포틴 아워(fourteen hour)'였는데, 이유는 하루에 열네 시간을 스튜디오에 계속 앉아 있어서였다. 사실 거의 종일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었다. 건축과 학생에게는 기숙사 방보다는 스튜디오 자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매 학기가 시작되면 스튜디오의 의자와 책상을 꾸미는 데 돈을 아낌없이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아이 때 우리는 어느 공간이든 재미난 공간으로 만들었다. 비가 오면 만들어지는 웅덩이에서도 재미나게 놀고, 차가 없는 골목길에서는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모래만 있는 놀이터에서는 두꺼비 집을 짓고 놀았다. 빈 공터에서는 구슬치기도 하고, 구슬이 없으면 줄을 긋고 오징어 가이상이라도 한다. 버려진 공간은 소중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여러분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이 여러분의 상상력과 만나면 대단한 장소가 된다"

 

 

 

 

 

 

"어디에 펼쳐도 텐트는 평온한 공간을 만든다. 비결은 둥그런 천장에 있다. 일상의 건축에서 경험하는 모든 천장은 평평하다. 둥근 천장은 대성당 돔 밑에 가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둥그런 곡선이 있다면 곡선의 중심점이 있는 쪽에 있느냐, 반대편에 있느냐에 따라서 경험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곡면 안쪽에 있으면 더욱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우리를 안아줄 때는 팔을 펴서 둥그런 형태를 만든다. 곡면 안쪽에 서게 되면 팔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현대인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직선이고 평평하다. 건물의 벽면도 평평하고, 천장도 평평하다. 그러니 도시가 무표정의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가장 인상깊게 봤던 문구

 

 

길거리를 걷다보면 늘 나오는 공원도, 널리 흔해빠진 카페도, 늘 머무르는 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공간과 시간이 바뀐다. 그리고 그 시공간은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는다.

 

 

 


 

 

누구나 추억 속의 공간이 있다. 직접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 혹은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좋은 기억이 있는 곳, 예를 들어 인터넷이나 게임 속에서 말이다. 나에게 있어 기억 속의 추억이 가장 크게 깃든 곳은 아무래도 유년 시절을 보냈던 외할아버지댁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유치원 다니기 전까지 쭉 거기서 살았으니까. 물론 아주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완전하진 않지만 그 당시 사진을 보면 작은 골목길에서 외조부모님과 부모님과 함께 놀았었구나 하고 어렴풋이나마 조금 기억이 난다. 

 

 

사진 속에 찍혀있지 않은 기억들 중 제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툇마루에 할아버지 품에 안겨 불러주시는 노래를 들으며 밤하늘에 빛나있는 별을 감상했던 장면이다. 어렸던 나에게는 부모님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할아버지였다. 머리가 크고 나서도 종종 김천으로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놀러 다니고 이야기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지금은 살아계시지 않다.

 

 

외조부와 이야기를 했을 때 본인에게 우리 엄마는 참 미안한 존재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마는 좋은 교우관계와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 진학을 원했지만 오빠, 남동생이 있었고 집안 형편이 매우 좋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업하셨다. 능력이 있었다면 엄마를 대학에 보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엄마를 볼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런 감정이 나에게 투영되어 과분할 정도로 나에게 잘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때론 무섭고 엄하실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상하게,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봐주셨다. 그런 할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골목길과 집이 나에게는 큰 추억의 조각이다. 지금은 그 집이 팔렸고 이사를 간 지 10년이 넘어 어디 있는지조차 정확히 기억을 못 하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언급한 장소 말고도 심연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장소들을 추억해보니 그 장소의 존재 자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학교, 학원, 카페, 사무실, 영화관, 거리의 건물 등 일상 속에서 지나쳤던 모든 장소들이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으며, 성격이 되었고, 추억이 되었다. 

 

 

여자친구와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서울 시청 스케이트장, 사귀기 전 알바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가서 일부러 같이 시간을 보냈던 기숙사 편의점,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도서관, 땀을 흘리며 같이 운동을 했던 동네 헬스장,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축구하며 뛰어다녔던 학교 운동장, 여행을 하며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던 외국 곳곳,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무실까지. 돌이켜보면 소중하지 않았던 장소는 없었다.

 

 

 

책에 있는 문장 중 꽤 인상 깊었던 문구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우린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대낮처럼 밝을 수 없고 약간의 별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별빛들로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듣는 별자리 이야기는 먼 옛날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았던 뱃사람이나 들판에서 양을 치던 사람들이 홀로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희미하지만 검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장소는 나를 만든 공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이다. 그 공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끔씩 있는 희미한 별빛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희미한 별빛들을 연결해서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려는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