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것이 주제다.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오지의 서식지에 그처럼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인간 종들을 망각 속으로 밀어넣었을까? 튼튼하고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우리의 언어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주위 세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효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남들이 그 이야기를 믿게 만다는 게 어렵다. 역사의 많은 부분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게 신이나 국가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 혹은 유한회사를 믿게 만드는가?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사피엔스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 수백 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이나 나무, 사자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랬다면 국가나 교회, 법체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인지혁명 이전의 인간 종은 모두가 아프로아시아 육괴에서 살았다.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기술과 조직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으며, 바다표범, 돌고래 등처럼 물갈퀴를 길러내거나 코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태평양의 해상여행자가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배를 건조하고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기술 때문에 호주까지 가서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호주에서 사피엔스의 정착으로 인해 호주에서 번영하고 있던 많은 동물들이 사라졌다. 호주 대형동물군의 멸종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행성에 남긴 최초의 굵직한 표식이었을 것이다. 호주뿐만 아니라 아메리카로까지 진격한 사피엔스는 역시나 그곳에 살고 있던 동물군들의 멸종을 불러왔다.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1의 물결 다음에는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2의 물결이 왔고, 이 사실은 오늘날 산업활동이 일으키고 있는 멸종의 제3의 물결에 대해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세상의 대형동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 뿐일 것이다.
1만 년 전 밀은 수많은 잡초 중 하나일 뿐으로서 중동의 일부 지역에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과 몇천 년 지나지 않아 세계 모든 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밀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밀은 바위와 자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밭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었다. 밀은 다른 식물과 공간, 물, 영양분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온종일 잡초를 뽑는 노동을 했다. 밀은 목이 말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샘과 개울에서 물을 끌어다 댔다. 밀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밀이 자라는 땅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동물의 변을 모아야 했다.
사피엔스의 신체는 이런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오르고 가젤을 뒤쫓는 데에 적응했지, 바위를 제거하고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데 적합한 몸이 아니었다. 인간의 척추와 무릎, 목과 발바닥의 장심이 대가를 치렀다.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밀은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무언가를 주었다. 밀 경작은 단위 토지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사치라는 덫에 인간을 말려들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사람들은 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또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먹이게 되면서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한 마을의 인구수가 100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10명이 있었을까? 돌아갈 길은 없었고, 덫에 딱 걸리고 말았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가 발명했던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휴대전화, 컴퓨터...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우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에만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우리는 이메일을 쓰자마자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바로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산업적 육류 농장의 송아지는 출생 직후 어미와 분리되어 자기 몸보다 그리 크지 않은 우리에 가둬진다. 송아지는 여기서 일생을 보낸다. 평균 4개월이다. 결코 우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며 다른 송아지와 놀지도 못하고 심지어 걸을 수조차 없다. 이 모두가 근육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근육이 약해야 부드럽고 즙이 많은 스테이크가 된다. 이 송아지가 처음으로 걷고 근육을 뻗으며 다른 송아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소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다. 이와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제국이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법률뿐 아니라 거래와 세금, 군수품과 상선의 목록, 축제와 승전기념일을 넣은 달력 등을 기록해야 한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정보를 저장해온 장소는 단 하나, 자신의 뇌였다.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제국 규모의 DB를 저장하는 장치로서는 훌륭하지 않은데,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용량이 부족하다. 둘째, 인간이 죽으면 뇌도 같이 죽는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인간의 뇌는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적응했다. 고대 수렵채집인이 살아남으려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의 형태와 속성, 행동 패턴을 기억해야만 했다. 어느 느릅나무 밑에서 가을에 자라는 주름진 노란 버섯은 독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겨울에 떡갈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비슷하게 생긴 버섯은 복통에 좋은 치료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이런 진화의 압력에 적응한 결과, 인간의 뇌는 막대한 양의 식물학, 동물학, 지형학, 사회학의 정보를 저장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커다란 왕국을 유지하려면 수학적 데이터가 핵심적이었다. 법을 제정하고 수호신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금도 걷어야 했다. 그런데 수십만 명에게 세금을 걷으려면, 사람들의 수입과 재산에 대한 데이터, 지불된 급여에 대한 데이터, 체납액과 빚과 벌금에 대한 데이터, 할인과 공제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했다. 기원전 3500~3000년 어느 시기에, 익명의 수메르인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피엔스 요약 and 리뷰 (3) (0) | 2020.02.15 |
---|---|
사피엔스 요약 and 리뷰 (2) (0) | 2020.01.19 |
Still me 스틸 미 리뷰 (0) | 2020.01.08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리뷰 (2) (0) | 2020.01.03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리뷰 (1) (0) | 2020.01.02 |
- Total
- Today
- Yesterday
- 여행 로그
- 브라질채권 환율
- 2024년 부산시 전세대출
- 2024년 부산시 신혼부부 전세대출 후기
- 브라질 채권 환차손
- 부산시 신혼부부 전세대출 후기
- 클라우드 워커 지원금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리뷰
- 토스증권 타사출고
- 메리츠증권 수수료
- 표현할 수 있는 자유
- 브라질채권 수수료
- 유발 하라리
- 토스증권 타사대체출고
- 벤치프레스
- 가족여행
- 클라우드 워커
- 히가시노 게이고
-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여수 루지
- 언론의 자유
- 삼성증권 타사대체출고
- 여수여행 후기
- 용평리조트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용평스키장
- 여수 클라우드워커
- 촘스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